이정현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늘 다른 걸 보여주고 싶어 했다. 그 마음 하나로 트렌드가 생기고, 세상에 없던 인물이 영화로 나왔다. 영화 〈성실한 나라의 앨리스〉에서 그녀는 또 한번 새롭다.

21.08.2015.

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. 이정현이 <성실한 나라의 앨리스>를 만난 건 박찬욱 감독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. 칭찬에 신중한 박찬욱 감독 입에서 나온 말은 “근래 본 각본 중에서 최고야” 였고, 이정현은 순식간에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갔다. “여배우 캐릭터를 독특하게 끌어냈고 반전도 있었어요.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한 호흡으로 읽혀서 1시간 만에 다 읽었어요. 신인 감독인데 극을 너무 잘 써서 깜짝 놀랐어요.” 영화는 손재주가 좋고 성실함 하나로 중무장한 수남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다. 한 편의 드라마이지만 블랙코미디이기도 하고, 로맨스, 스릴러, 형사물 등이 뒤범벅되어 있다. 자유로운 상상력이 펼쳐지는 이 영화를 두고 이정현은 ‘잔혹동화’ 같았다고 말한다. 이 영화는 전적으로 이정현의 영화다.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 당시 이 역할을 연기할 다른 배우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평가가 이어졌다.

<성실한 나라의 앨리스>는 이정현이 두 번째로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다. 첫 번째는 <꽃잎>이었다. 19년 가까이 지났지만 대중은 여전히 이정현을 두고 <꽃잎> 얘길 한다. 신들린 연기, 미친 연기라는 수식어가 줄곧 그녀를 따라 다녔다. “<꽃잎>은 이제 그만 버리고 싶어요. 너무 좋지만 너무 오래됐어요. 유일한 작품이 아니라 나중에 함께 거론되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.” ‘열여섯 살 데뷔작’ ‘3000:1 경쟁률’ 과 같은 숫자는 <꽃잎>에서 이정현을 반도 설명하지 못한다. 그녀가 연기한 광주 학살을 목격하고 미쳐버린 소녀는 그 자체로 역사이자 꽃잎이었다.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 없는 열여섯 살 소녀가 선보인 연기는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. 이정현이 부른 김추자의 ‘꽃잎’은 참 아팠다. 괴물 같은 여배우의 등장에영화계는 대종상영화제,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안겼다. 이후 공포영화 <하피> 등 작품 출연을 이어갔지만 이정현의 활동엔 가수의 비중이 더 커져갔다. 필모그래피는 2000년부터 10여 년간 뚝 끊겨 있었다. 앨범을 세 장 더 냈지만 국내 활동 기간이 짧았다.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각될 여지도 없었다. 당시만 해도 토크 중심 예능이었고, 이정현은 토크쇼 체질이 아니었다. 그 시간 동안 이정현의 무대는 중국이었다. ‘3대 기획사 총수입보다 출연료가 높다’ ‘체육관으로는 부족해 평야에서 콘서트를 했다’ ‘국가주석이 초대했다’는 등 풍문만 들려왔다. “한동안 공포영화나 신들린 역할만 들어왔어요. 그런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싫었어요. 국내 음반 시장이 안 좋다 보니 중국 활동을 하게 되더라고요. 전 시나리오를 많이 까다롭게 보는 편이에요. 뭔가 독특한 게 있다거나 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게 되는 거 같아요. 아무리 연기가 하고 싶다고 아무 작품이나 할 순 없잖아요. 여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지만요.(웃음)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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